2019

다녀왔던 공간의 사진을 보면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길을 걷다 보면 보는 사물들과 풍경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공원에서의 조경과 놀이동산에서 기획으로 만들어진 공원의 나무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거 같지 않았다.

작업은 큰 틀에서의 기록을 목표로 한다. 이전까지의 작업에서의 기록은 주변인, 나의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남기는 데에 집중을 했다. 작업의 시작을 찾기 위해 고민했으나, 그것이 나의 가족 안의 역사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추억 때문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기록을 목표로 함은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남기는 것, 어느 하루의 기억이던 애정하는 주변 사람이던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그 모든 것이 기록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가 남기려는 기록의 전부를 한 화면에 넣고자 했다. 한 화면 안에 내가 관찰한 모든 것들을 다 넣으며, 그에 대한 나의 시선을 완성하고자 했다. 관찰한 모든 것을 한 화면에 넣음으로 관찰대상에 대한 서사를 완성하려 했던 시도가 너무도 욕심같이 느껴졌다. 이전의 작업을 돌이켜 보며 한 화면에 모든 레이어를 하나의 레이어로 합치기 보다 내가 쌓아가고자 했던 레이어를 하나씩 분리해 보기로 했다.

 

특히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풍경, 풍경 안에서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것들을 빼거나, 그 안에서 중심을 유지해주던 것을 지워버렸다. 잘 꾸며진 공원과 조경들을 보며 그 공간 안에 함께 하지 않고, 제 3자와 같이 먼 곳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연극무대를 바라보는 관람객처럼, 공간 안에 함께하지만 거리감을 느꼈던 장면들을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다.

기록에서 시작한 작업은,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본인에게 있어 작업은 당시의 시공간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창으로 다가오는데, 이전의 작업이 내 옆에 자리한 인물을 담아오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보다 대상을 확장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 작업의 방향을 두고 있다. 의궤를 비롯한 기록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틀을 작업의 프레임으로 빌어와 화면에 담기는 것들이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동시에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첫 단계인 붉은 선은 화면의 시작을 담당하며, 작업의 시작 단계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