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ement_2020

 

껄끄러운 이미지 그러니까, 시위나 슬로건처럼 강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다소간의 불편함을 가져오는 이미지들을 동양화 화면에 얹힌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들이 동양화에서 왜 다뤄지지 않는지, 기피의 대상이 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기본적으로 동양화, 특히 한국의 고전 그림에서는 껄끄러운 소재 자체를 지양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한국이 더 그런 경향이 짙었다. 일본처럼 귀신이나 요괴를 그리지도 않고,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은 손에 꼽지만, 선비가 은둔하는 그림이나 어부가 된 그림은 넘치고, 교훈적이거나 행복을 담은 이미지만 생산되고 공격적이거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소재는 다뤄지지 않았다. 예전의 이야기로 치기엔 오늘날도 특히 동양화단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논의 자체를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마치 말을 안하고 모른 척하고 있다 보니 굳어진 분위기와, 그 안에서 작업하다 보니 스스로 말을 하는 법을 점점 잊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도블럭에 엎어진 킥보드, 빔 프로젝트로 보는 결혼식, 길거리에 하릴없이 서있는 판넬 등, 당연하면서 동시에 이질적이고 어딘가 부족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미지부터 나를 일상적으로 분노케 하는 기사들, 이로 인해 촉발된 시위와 그 시위를 구성하던 강한 목소리들. 기사의 사진으로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사라지는 그 이미지는 누군가 시위 전 날 포스터 칼라로, 색지를 묵묵히 잘라 다시 배치하여 탄생한 이미지들이었다. 직접적이다 못해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슬로건이 항상 여유롭고 자적한 그 종이 위에 올라온다면 어떨까.

화면의 붉은 선은 동양화적 특성이나 느낌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 작품 밖의 액자보다 그림 안에서의 역할이 더 커진다. 작품 안에서는 동양화의 느낌을 내는 한 장치로 기능하는 동시에 고전 회화에서 원래 붉은 프레임이 가진 역할 (액자, 북 디자인의 차원에서 구획을 나누는 것 등) 역시 걸쳐 있기 때문에 둘을 명확히 분리시키기는 어렵다.

 

 

가는 응시 moving gaze :
‘gaze’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단어를 발음하고
있노라면 어쩐지 자연스레 그리고 그윽히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응시’도 그러하다.
단어가 주는 그 기분과 취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
나는 지겹도록 길에다 긴 시간을 쏟아붓는다. 하
루도 거르지 않고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길에서
항상 무언가를 바라본다.
똑바로, 약간은 내려간 입꼬리로 끊임없이 응시한다.

단단한 선 solid line :
붉은 선과 함께 시작되는 작업은 응시로 수집된 매
체를 기록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기록’의 시작을
찾기 위해 고민했으나, 여전히 그것이 가족의 역사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추억 때문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프레임으로 그림 외적인 요소로 오해받기도 하는
붉은 선은 동양화에 대한 나의 시선이고,
안과 밖을 나누며 동시에 하나로 만드는 중심이다.

moving gaze :
I like the word ‘gaze’. By pronouncing the word,
I just deeply and naturally seeing the object.
So does the word ‘eung-si'(Korean word of ‘gaze’).
There is a feeling and behavior that word gave to the audience.
I spend tone of time on the road. There isn’t a day without bus, subway, and road, I keep gazing.
Straightly, with impassive face I constantly gaze.

solid line :
The red line is a start point of my work. It’s chosen for recording the object. Always wondered where would be the beginning of the ‘record-document’, whether it came from family history or pieces of childhood memory. It is still unclear.
It is a frame sometimes misunderstood as the external part of the painting.
Red line is my gaze to the oriental painting, and the one divide inside out and at the same time a center itself.

Statement_2019

다녀왔던 공간의 사진을 보면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길을 걷다 보면 보는 사물들과 풍경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공원에서의 조경과 놀이동산에서 기획으로 만들어진 공원의 나무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거 같지 않았다.

작업은 큰 틀에서의 기록을 목표로 한다. 이전까지의 작업에서의 기록은 주변인, 나의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남기는 데에 집중을 했다. 작업의 시작을 찾기 위해 고민했으나, 그것이 나의 가족 안의 역사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추억 때문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기록을 목표로 함은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남기는 것, 어느 하루의 기억이던 애정하는 주변 사람이던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그 모든 것이 기록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가 남기려는 기록의 전부를 한 화면에 넣고자 했다. 한 화면 안에 내가 관찰한 모든 것들을 다 넣으며, 그에 대한 나의 시선을 완성하고자 했다. 관찰한 모든 것을 한 화면에 넣음으로 관찰대상에 대한 서사를 완성하려 했던 시도가 너무도 욕심같이 느껴졌다. 이전의 작업을 돌이켜 보며 한 화면에 모든 레이어를 하나의 레이어로 합치기 보다 내가 쌓아가고자 했던 레이어를 하나씩 분리해 보기로 했다.

특히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풍경, 풍경 안에서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것들을 빼거나, 그 안에서 중심을 유지해주던 것을 지워버렸다. 잘 꾸며진 공원과 조경들을 보며 그 공간 안에 함께 하지 않고, 제 3자와 같이 먼 곳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연극무대를 바라보는 관람객처럼, 공간 안에 함께하지만 거리감을 느꼈던 장면들을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다.

기록에서 시작한 작업은,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본인에게 있어 작업은 당시의 시공간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창으로 다가오는데, 이전의 작업이 내 옆에 자리한 인물을 담아오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보다 대상을 확장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 작업의 방향을 두고 있다. 의궤를 비롯한 기록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틀을 작업의 프레임으로 빌어와 화면에 담기는 것들이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동시에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첫 단계인 붉은 선은 화면의 시작을 담당하며, 작업의 시작 단계로 자리 잡았다.